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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웁니다.
 관리자  | 2021·11·16 15:40 | HIT : 24 | VOTE : 0
닭이 웁니다! 마태 26:69~75
2021 1114 목양교회 이청산목사 설교

  추수감사절은 구약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입니다. 출23:14-17 수장절, 초막절에 관한 기록입니다. 오늘날의 추수 감사절은 1620년 청교도들이 북미 대륙의 플리머스에 도착하여 추운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추수할 곡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1621년)를 드린 것이 유래입니다.
조지 워싱턴은 1789년 추수감사절을 법으로 선포했습니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이 11월 넷째 목요일을 National Thanksgiving Day로 선포했습니다. 한국 초기의 교회들은 미국선교사들의 영향으로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11월 셋째주일을 한국의 추수감사절로 지킵니다.

한국장로교회가 지킨 최초의 추수감사절이 1904년 11월 10일 입니다. 11월 셋째주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1914년부터, 미국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온 것을 기념해 추수감사주일을 정한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장로교회의 전통을 따라 11월 첫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켜 왔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11월 셋째 주일, 다음 주를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함께 공동식사라도 하고 찬양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늦추었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많은 교회들은 벌써 믿음이 너무 좋고 용기가 많아서 할 것 다 합니다만, 저는 목양식구들이 교회에 왔다가 코로나에 감염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주관입니다. 방역수칙도 함께 세운 약속입니다. 시민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입니다. 교회가 자기 편의에 빠져서 원칙을 어기면, 교인들은 이런 생각할 겁니다.

“아! 편의에 따라 교회도 이럴 수 있구나!” 이러면 보이지 않는 영적인 기준은 더 지키기가 어려워집니다. 교회가 교인을 최고로 보살피는 것이 목회의 기본입니다. 코로나 걸려서 나아도 후유증이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조금만 더 인내하고 기다리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영적으로 추수감사주일을 준비하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예수님이 주신 빵과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을 즈음에,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바로 그때 베드로가 "주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 주를 버릴지 몰라도 나만은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는 도리어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정말로 베드로는 주님 말씀처럼,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합니다.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나가서 대성통곡합니다.
자신의 모자람, 부족하고, 비겁한 자신을 한없이 원망하며 울고 있는 베드로! 하지만 더 생각을 해보면 베드로뿐만 아니라, 우리도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모두가 부족함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본문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어릴 때 들었던 생각입니다.
아니! 주님은 베드로를 그렇게 총애했으면 자신을 부인하지 않도록 하실 수 없었을까?
왜? 예수님은 베드로를 시험하신 것일까? 결정적인 순간에 넘어지는 베드로를 성경에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왜? 꼭 그렇게 하셔야만 했을까? 다 알고 계셨으면서 부인하도록 하신 이유는 무얼까? 등등의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룟 유다만 해도 그렇습니다. 상식적으로 봐도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 주님께 인정받는 최측근입니다. 여러분들 회사생활을 조금만 해보면 알지요! 조직에서 신뢰하는 사람을 회계 책임자로 세우는 겁니다. 예수제자공동체의 살림을 맡아서 한 사람이 바로 가롯유다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팔아 넘길 것을 알았던 예수님이 유다를 따로 불러서 안수기도 한번 하면 마음을 돌리고 끝까지 생명을 바치는 제자로 살지 않았을까요!
이런 질문을 가지고 본문 말씀을 보고 묵상을 합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신 사람이 아니고는 아무도 나에게로 올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요6:65)

예수님의 이 말씀이 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해 주신 사람” 주님이 예정한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예정하심에 어떻게 되어 있는지가 궁금해집니다. 그렇지요? 이 물음은 다음에 한번 따로 다루어 말씀하겠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에 집중해서 생각해 봅니다.
"여보시오, 나는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소." 베드로가 아직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곧 닭이 울었다.(눅22:29-30)

자신만을 생각하기에 누구도 예외없이 이런 자리에 놓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기에 그렇습니다. 아브라함도 자기 생명이 위태롭자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아브라함. 베드로만 그렇까요?
우리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체면과 자존심을 지키고 손해보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태도가 베드로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닭이 웁니다. 베드로 옆에서 울었던 닭은 우리 옆에서도 웁니다.
세 번이 아니라 수십번이나...
베드로는 닭울음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자신도 울었습니다.

닭을 보거든 베드로를 생각하십시오.
누가 곁에서 울거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을, 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하던 선생님을 배반한 베드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불안하고 초조하고 뭔가 껄적지근 하지 않았을까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베드로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주님 말씀이 생각나서 비통하게 울었습니다.

평소에 우리는 베드로를 향해 비난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베드로보다 수십배는 더 못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닭이 울 때에는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이 우는데도 모른 체하고 무덤덤합니다. 주님 말씀이 생각나지도 않습니다. 닭이 울어도 수십번 울었는데도, 여전히 모른 체하고 삽니다.
오늘 베드로를 보며 자신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수제자의 비겁한 모습을 그대로 기록하면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도 최소한은 이렇게는 살아야 한다!
살다보면 비겁해질때도 있지! 겉과 속이 다를때도 있어!
하지만 닭이 울면 말씀을 기억하고 돌아와라!”

주여! 우리도 닭의 울음과 눈물처럼,
통곡하는 베드로처럼, 애통하게 하소서!

생각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이기적입니까! 항상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하며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마음 씀씀이를 봐도 눈앞의 이익에만 기준을 두고 살 때가 많습니다. 쓰면 밷고, 달면 삼킵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건강, 가족, 사랑, 실력, 인정, 성취, 지식, 인간관계에서 부족함이 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부족함과 못난 모습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인정하길 바랍니다.
베드로의 한계는 우리의 본모습입니다. 부족함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수 있어야 진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관점에서 한계를 말하는 것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는 것입니다. 모자람은 감사의 제목입니다.
부족함은 용기의 근원입니다. 부족함은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나 부족하고 모자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부족함과 한계라는 제비가 물어다 주는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부족하고, 모자라도, 아픔과 고통 중에라도,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아는 사람! 바로 이 사람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부족함의 감사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자기 믿음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맡기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건강, 가족, 사랑, 꿈, 실력, 인정, 성취, 지식, 관계-에서 다가오는 한계 즉 부족함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행복입니다. 연약함이 은혜입니다.

본문 75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통곡하는 베드로는 단순히 한 명의 제자가 아닙니다.
그는 12명의 제자공동체의 상징이며,
오늘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대표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도 베드로가 부인하는 현장에 함께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는 오늘을 사는 당신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십시오.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부족함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믿고 나아가십시오.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부족함과 모자람 한계가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행복한 것은, 모든 것을 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 부족한 만큼,
하나님의 도우심의 크기는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닭이 웁니다. 십자가 앞에 나오십시오.
이번 추수감사절은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십자가 앞에 나아오는 회개의 감사가 넘치길 축원합니다.
  
  살아내는 감사  관리자 21·11·22 18 0
  버리라!  관리자 21·11·10 9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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