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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 있느냐!
 관리자  | 2021·08·30 07:47 | HIT : 164 | VOTE : 76
2021 0829 지금 어디 있느냐? 창3:1-13
상암동 목양교회 주일말씀

  지난 주간에 뉴스를 보면서 두 개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한 장은 6.25전쟁, 흥남철수 작전에서 빅토리아호 배 안의 가득한 피난민 사진입니다. 또 한 장의 사진은 아프칸 카불공항에서 이륙직전 있는 우리 공군 수송기안 가득한 아프칸 사람들의 사진이었습니다. 어찌나 닮았든지 온몸에 전기가 흘렀습니다. 이들 중에 아이들이 100여명이랍니다.
저는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 아이들이 훗날 아프칸을  이끌어 갈 평화의 지도자들로 자라나게 하소서!” 이 기도를 주께서 이뤄 주시실 것입니다. 멀지않은 미래에 중동에 평화의 열매가 열리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맹자는 인간은 본성에 있어서 선하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의 선함은 사단, 즉 <인,의,예,지>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인은 측은지심, 의는 수오지심, 예는 사양지심, 지는 시비지심입니다.
1.측은지심(惻隱之心)
- 남의 불행을 보고 불쌍히 여기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2.수오지심(羞惡之心)
-자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
3.사양지심(辭讓之心)  - 겸손하고 양보하는 마음
4.시비지심(是非之心)  -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마음

순서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측은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수오지심이 따라옵니다.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맨 마지막에 시비지심, 즉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것은 맨 나중에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에던 동산, 세상의 모든 만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안스러워 하와를 주셨습니다. 아담은 너무 좋아서 “내 살중의 살, 내 뼈중의 뼈!”라고 감탄을 합니다. 매일 같이 있고, 같이 먹고, 같이 놀고, 같이 자고, 같이 일했습니다. 항상 같이 있었습니다. 서로를 너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도 혼자 먹지 않고 같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선악과를 먹고 나서 달라졌습니다.

눈이 밝아졌고, 그 결과로 벗은 몸을 알고 부끄러워서 가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피해서 숨었습니다. 서로 상대방의 잘못 때문이라고 책임을 회피합니다. 사랑하던 사이에서 상대방에게 죄를 떠넘기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아담과 하와인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불만이 많습니다. 옂ㄴ히 모자다고 합니다. 자기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지금까지 주신 축복을 은혜인 줄 모르고 삽니다. 감사를 전부 다 엎어버리고 불평만 하고 사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8절에 “주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남자와 아내는 주 하나님의 낮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로 숨었다”
전에는 “하나님 오셨어요!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했습니다. 그런데 달라졌습니다. 말없이 숨었습니다.
스스로 죄된 존재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바로 그날!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바로 그 순간에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하고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기에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오셔서 물으십니다.
“지금! 어디에 있느냐?”

아담아! 모세야! 사무엘아! 엘리야야! 사울아!
성경은 곳곳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평생 동안 신앙 생활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시는 음성을 들어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합니다. 단순히 귀로 듣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아쉬워 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혼자 서서 하나님을 구하십시오. 반드시 부르심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고막의 진동을 통해 들리는 소리를 넘어선 소리를 통해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뜨거운 눈물로, 가슴을 뒤흔드는 전율로, 가슴 벅찬 뜨거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영혼 깊이에서 울리고 솟아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첫 번째 질문입니다.
“네가 어디있느냐! 저는 벗은 몸인 것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이 물음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보입니까?
“쯧쯧쯧! 어쩌냐! 왜 그랬니! ”하시며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입니다.

아담은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알았고, 그래서 두려웠고, 그래서 숨었습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뻔뻔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기자회견을 합니다. 초등학생이 웅변대회에서 고함지르는 모습입니다.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하면 끝날 일입니다. 잘못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온 국민을 향해서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고 큰소리를 지릅니다.

이게 다 우리의 숨겨진 뻔뻔한 얼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책임전가하는 우리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3:1 뱀은 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하였다.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

에덴동산의 타락과 범죄는 돕는 짝, 동반자의 관계가 깨어지는 순간에 시작되었습니다.
뱀이 하와에게 “하나님이 너희더러 이 동산의 모든 나무열매는 하나도 먹지 말라하셨는데 그게 정말이냐!”

여기서<너희더러> 이 말을 보면 하와 곁에 아담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뱀이 다가와서 하와를 유혹할 때, 가짜뉴스로 속이고, 꼬드길 때, 곁에 있던 아담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곁에 있었으면서 투명인간처럼 무관심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뱀이 나타나서 자기 아내를 향해 유혹하고, 말장난으로 시험하는데 곁에서 무덤덤하게 있을 수 있습니까?
“너! 어디서 수작을 부려! 혼 좀 나볼래!”
이 정도의 최소한의 반응은 있어야 했습니다.

유혹과 시험이 오고, 사과를 누가 먼저 먹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통적으로는 하와가 유혹에 넘어간 것이 타락의 시작이다! 여자가 죄악의 시작이다! 그래서 탈레반은 여자에게 부르카라고 하는 검은 천을 뒤집어 씌우는 겁니다.
그렇지만 아닙니다! 분명하게 말하면 아담의 죄가 더 큽니다. 서로에게 하나님을 대신한 손길입니다. 서로를 바라보고, 관심하고 지켜야지요! 아담으로부터 죄가 시작되었습니다.

6절 하반절에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함께 있는 남편”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범죄의 현장에 아담도 함께 있었습니다. 누가 유혹했느냐! 누구에게 먼저 먹었냐! 주길래 먹었다! 저 여자 때문이다! 하는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함께 있었고 공범입니다. 그래놓고 아내에게 핑계를 대는 아담입니다. 얼간이, 무능한 남편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서로를 향한 무관심과 방관! 이것이 타락과 범죄의 시작이라고 말씀합니다. 서로에게 하나님의 손길을 대신한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틈인지 몰라도 서로를 무관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능력이 없는 에덴동산은 더 이상 낙원이 아니고 범죄현장일 뿐입니다.

서로를 바라보고, 돕고, 의지하고 지켜주는 곳이 가정입니다. 이곳이 에덴동산입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서로 각자 남처럼 삽니다. 상대에게 책임을 미룹니다.
“이렇게 된 책임은 너한테 있어!” “너 때문이야!”
상대에게 손가락질합니다. 부부가 남처럼 사는 가정, 사랑의 능력이 없어진 가정은 에덴이 아니고, 전쟁터이고, 지옥의 시작입니다.
한마디로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사라진 겁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현실 앞에 주님은 다시 에덴을 회복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의 첫머리에 에덴동산 사건을 기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먼저 묻고 계시는 겁니다.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으셨을까요?
지금 하나님이 나타나시기 바로 직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서로의 무관심과 방관 때문에 죄지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살중의 살! 뼈중의 뼈”이것이 부부입니다. 부부는 상대의 마음을 살펴서 아픔을 덮어주고, 조심스런 손길로 쓰다듬고 서로를 위로해야 합니다. 세상에 이 일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입니다.
내 아내를 누가 위로할 수 있습니까?
내 남편을 누가 다시 세울 수 있습니까?

누가 그 일을 해야 합니까? 바로 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 일을 모른 체하고, 방관하고,
오히려 책임만 묻고 있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내>를 우리 말로 풀면 “안에 있는 해”입니다. 해가 비쳐야 생명이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성경 원문에 “돕는 베필” “하나님을 대신한 손길>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뜻입니다.
아내인 내가 위로해주고, 쓰다듬어 주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가서 위로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겁니다.

내 손길로 남편을 지키고, 내 손길로 아내를 지키십시오.
여러분의 손길은 하나님을 대신한 손길입니다.

12 그 남자는 핑게를 대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
   그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그것을 먹었습니다."
못난 남편 아담의 모습입니다.
아내를 안타까이 여기는 측은지심도, 하와가 그렇게 되도록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도 없는 수오지심도 없는 얼간이입니다.

측은지심은 예수님의 복음중에 복음입니다.
'불쌍히 여기다-<스플랑크 니조마이>'입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의 병을 고쳐주실 때  '민망히 여기사'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스플랑크 니조마이>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겁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거반 죽은 '강도만난 자를 불쌍히 여겨' 할 때도 그 단어예요. <스플랑크 니조마이]> 탕자를 기다리던 아버지가 탕자가 돌아왔을 때 '그를 불쌍히 여겨' 여기서도 같은 말씀입니다.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 중에도 예수님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이 불쌍히 여기다-<스플랑크 니조마이> 는 예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지금 어디 있느냐! 이 말은 지금 불쌍히 여기라!하시는 말씀입니다.
서로를 향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니 서로 불상히 여기십시오. 성령 하나님이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의 기준  관리자 21·09·06 121 67
  은혜를 알아야!  관리자 21·08·23 158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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