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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관리자  | 2021·04·07 11:06 | HIT : 57 | VOTE : 6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2021 0404 부활주일 목양교회 이청산목사
요한복음 20:19-23

  주보 1면의 그림을 보세요. 어떤 그림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여 주시는 못 박힌 흔적을 가진 손입니다. 오늘 이 시간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의 손길로 고침받고 해결받고 회복되길 축원합니다.
작년에는 부활절예배를 가정예배로 드렸지요! 그래도 올해는 예배당에서 제한적이지만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이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코로나19>는 아직도 우리 곁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3월말 4월초에 하루에 9천명이 사망하고 있습니다. 긴장의 고삐를 놓지 마십시오. <코로나19>로 인해 죽어가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길 축원합니다.
또한 미얀마 국민들의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을 듣습니다. 못 박힌 상처 난 주님의 손길이 저들을 지키시고 위로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른 사람의 가슴에 못 박는것만 하는 삶입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손과 발에 못박히셨습니다.
시인 차옥혜는 시장 좌판을 하는 할머니 손에 못이 박혔답니다.

어제도 교우 몇 분이 예배당을 쓸고 닦고, 부활절 프랑카드를 걸고 축하 계란을 준비했습니다. 전부가 다 손이 가는 일들입니다. “손”은 신체의 일부입니다만, 손은 마음이 있어야 움직입니다. “엄마 손이 약손!” 어린 시절 배가 아플 때면 어머니가 배를 쓸어주셨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 낫곤 했습니다.
손은 반드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담습니다. 여러분의 손을 통해 사랑과 정성이 묻어나고 전해집니다.

오늘 본문 20절입니다.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십니다. 바로 뒤의 27절 이하에도 못 박힌 자국을 보여 주시고 의심하는 도마에게 손을 넣어 보라고 하십니다.
이 시간 예수님 손에 난 못자욱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멍 난 예수님의 손! 바로 그 손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창에 찔려서 구멍난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보혈이 우리를 씻기고 생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손과 발바닥에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다가 생긴 못자국이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를 살리기도 하시고, 망하게도 흥하게도, 낮게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삼상12:6-8).
시102:25에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고,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셨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손이었고,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추방하시며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손이었습니다.
430년의 애굽의 종살이에서 히브리 백성을 구원해 주신 것도 하나님의 강한 권세와 능력의 손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손은 우리를 지키고, 인도하시고, 섭리하시는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고,
부와 존귀가 주께로부터 나옵니다.”(대상29:12).

예수님의 손은 어떻습니까?
“예수의 머리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요20:7) 이 말씀에 주목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섬세한 손길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돌 무덤 속에 주검으로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입힌 세마포를 벗어 던지고 무덤을 빠져나가기에 급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자신이 입었던 세마포 수의를 벗어서 차곡차곡 개어서 한편에 두셨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위로의 손입니다. 예수님이 만져주시는 순간 상처 입은 영혼이 큰 위로를 받습니다. 나병환자가 고쳐지고, 눈먼사람이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손으로 우리를 어루만져주시고 속죄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가출했던 탕자가 돌아왔을 때 그 아버지가 목을 안고 어루만진 그 손입니다. 아버지의 손은 용서의 손, 회복의 손이었습니다(눅 15:20).

예수님의 못 박힌 손은 죽음의 수의를 벗어 놓고 생명의 옷을 입으신 손입니다. 못 박힌 상처를 가진 손이 여러분의 육신을 고쳐 주십니다. 또한 상처받은 마음과 영혼도 치유하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언제든지 예수님의 손을 의지하고 간구하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고 싶었던 곳이 어디였을까요?
빌라도 총독, 대제사장, 헤롯왕, 자신을 재판하고 모욕하고, 멸시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 희롱한 자들! 그들 앞에 당당히 보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세상의 논리나 상식은 당연히 이럴 겁니다.

“자 봐라! 나는 너희가 못 박아 죽인 예수다!”
로마 총독을 좆아 내고, 대제사장을 숙청하고 예수님이 권좌에 앉으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환호할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정치적 선택을 버리고
영적 선택, 사랑의 선택을 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보고 싶었습니다.
두려워 떨고 있을 제자들이 불쌍하고 안타까왔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한걸음에 달려 오셨습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하시고서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십니다. 이것을 보고 제자들이 기뻐합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21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제 살길 찾아 도망했던 제자들은 지금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왠일입니까! 저들 눈으로 똑똑히 죽음을 보았던 그 예수님이 다시 살아서 저들 앞에 계신 겁니다. 미안함과 죄스러움과 송구함에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쥐구멍을 찾아 숨고 싶었을 겁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찾아와 평화를 빌어 주십니다.
괜찮다! 미안해 할 거 없다! 고개를 들어라!
두 손과 옆구리를 보이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못 박힌 상처가 있는 예수님의 손이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 말씀은 너희도 세상에서 두 손에 못 박히고, 옆구리를 찔리더라도 나처럼 끝까지 용서하고 살라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22-23절)

예수님이 굳이 왜! 이 말씀을 하실까요?
성령충만! 성령세례! 성령의 기름부으심! 이런 말 많이들 합니다. 이런 단어를 많이 쓰면 믿음이 좀 있어 보이고, 스스로 거룩해지는 느낌도 드는가 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말씀대로! 알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령을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후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주신 첫 번째의 은혜가 이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려면 반드시 이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배반과 도망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용서”입니다.
용서는 성령 충만의 열매입니다.
용서하는 사람만이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큰 목소리로 “예수부활! 예수부활!” 천번 만번을 외쳐서 부활의 증인이 됩니까? 예수님과 아무 연관도 소용없습니다. 허공을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은 추상적이고 화려한 말재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흉내내는 것만으로는 오래 못갑니다. 우리들의 상처난 손과 옆구리를 통해서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보여지고 증거됩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 이것이 부활신앙입니다. 내 안에 사는 예수그리스도는 부활하신 분입니다. 손과 발에 못 박히고,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고 죽임을 당 해보신 분입니다. 이런 아픔과 고난을 통해서 사랑을 배우셨고,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여러분에게 전해지고 공감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 마음이 은혜가 되면 이것이 성령충만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세상 살면서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겁니다.
예수님을 닮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의 삶에서도  재현되는 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령을 주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두 번씩이나 이 말씀을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시는 가장 큰 은혜는 “평화”입니다.  

오늘 세상 가운데서 코로나 질병의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있는 모든 이들에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화가 임하길 축원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해 질 것이다.”(요 20:21-22)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살게 하셨습니까?
-가장 낮고, 천한 곳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순종입니다.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지만 순종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부활해서도, 자기 명예회복과 정치적 선택을 하지 않고, 오직 제자들을 위하여 사랑의 첫걸음을 하신 예수님!

“내가 하나님의 분부하심에 순종한 것처럼 너희도!”
나도 너희를 십자가의 사람으로!
순종의 사람으로! 사랑의 사람으로! 용서의 사람으로 보낸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2)
예수님 따르는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의 못 자국 난 손처럼 여러분의 손에도 못자국이 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사랑의 손길과! 눈물의 기도를 통해,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 가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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