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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이루라
 관리자  | 2021·01·26 12:43 | HIT : 143 | VOTE : 17
목양교회 주일설교  2021 0124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
행전 16:25-34
                      
  소낙눈이 쏟아진 18일 오전, 거센 눈발이 그치기 전 사진 취재를 하기 위해 서둘러 서울역 앞 광장으로 향했다. 바쁜 출근길 시민들도 지각이라도 할세라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이내 멀리 광장 한켠 두 남자가 뭔가를 주고받는 모습이 사진기자의 카메라 앵글 속으로 들어온다. 깔끔한 차림의 한 남자가 자신이 입고 있던 긴 방한 점퍼를 벗어 노숙인에게 입혀주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내 주머니 속 장갑과 5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노숙인에게 건넨다. ‘무슨 일일까?’ 상황이 끝난 듯해, 얼른 뛰어가 노숙인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선생님이 잠바랑 장갑이랑 돈도 다 주신 거예요?” “네, 너무 추워 커피 한잔 사달라고 부탁했는데….”
소낙눈이 쏟아진 1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서 한 시민이 거리 노숙인에게 자신의 방한 점퍼를 덮어주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자 점퍼를 건넨 남자는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미끌미끌 눈길 위로 뒤 쫓아갔지만 그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노숙인에게 다시 상황을 물어보려 돌아봤지만 그도 어디론가 없어진 뒤였다.
(2021. 01.18 한겨레신문/백소아기자)
이 기사와 사진을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기사 속에서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겁니다. “가서 이같이 해라!”
미안하고,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한 사진기자의 렌즈를 통해 하나님은 이 시대를 향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가서! 이같이 해라! ”

오늘 우리는 11월 말 이후로 2달여 만에 다시 예배당에 모여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기다리신 교우들에게도 감사합니다. 교회에서 모여 예배하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이 되었습니다.  
예배당에서 드려야만 예배다! 종교탄압을 뚫고, 순교자의 마음으로 주일예배를 사수해라! 아직도 이런 주장을 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종교시설을 통한 감염자가 45%입니다. 물론 카토릭,신천지,불교도 있지만 거의가 개신교회입니다.

코로나 1주년! 몇 달, 길어도 1년이 지나면 좋아질 줄 알았는데, 벌써 1년이 지났고 이직도 진행 중입니다. 백신을 맞으면 곧 끝난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것도 장담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백신개발은 신속하게는 5년, 늦어지면 10년이 개발기간입니다. 코로나 백신은 10개월 만에 도깨비 방망이 휘두르듯이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인이 임상시험 대상이 된 겁니다. 긴급상황이기에 임상시험이 부족해도, 사용 승인을 한 겁니다. 이래서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끝날 수도 없다고 합니다. 백신도입이 조금 늦어진 우리나라의 경우가 오히려 다행입니다.

강도만난 이웃들이 가득한 코로나 시대입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드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를 도와 주소서!
코로나에 걸려서 자가격리, 입원 치료중인 이들에게 주님의 손길이 지켜 주소서! 이들을 검진하고, 치료하고 보살피는 이들도 힘과 용기와 인내를 주소서! 방역조치 때문에 매출이 하나도 없는 이들, 일자리가 사라진 이들, 생계가 막막해서 눈물 흘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주여 이들을 지키시고 돌보아 주옵소서.! 속히 코로나의 광풍이 지나가고 평화로운 일상을 회복하게 하소서!”

그런데 기도하고, 사는 것은 자기 맘대로입니다.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강도당한 이웃들이 역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데, 거룩한 제사장이여서, 레위인여서, 예배를 드려야 한답니다. 남이야 코로나 걸려도 상관없다는 겁니다. 이러고도 무슨 이웃사랑을 말할 수가 있습니가? 세상에 이런 말로 않되는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너희가 그렇게도 제사를 원하느냐! 너희의 제물 태우는 냄새가 역겹다!”고 하시는 말씀이 귓가에 쟁쟁합니다.

이것이 다 우리의 잘못입니다. 맹목적인 신앙으로 이익을 보려는 것은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요2:17에 “주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이 말씀 그대로입니다. 지금도 자기 신념으로 예수님과 교회와 성도들을 팔아넘기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선한사마리아사람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곳을 지나다가 강도당한 사람을 봤지만, 피해 지나갑니다.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냥 지나가는 이유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보거나 만지면 2주 동안 직무정지를 당하는 율법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마리아인이 그곳을 지나다가 33절에 이 사람은 보고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고 기록합니다.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보살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고 싶으냐! 너도 가서 이와 똑 같이 해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과 영생은 측은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라고 강조하십니다.

이 시대의 선한 사마리아인은 측은한 마음으로 이웃을 돕는 사람입니다. 강도 만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상한 갈대도 꺽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과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측은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빌립보 감옥에 억울하게(?) 구금된 바울 일행이 한밤중에 기도하면서 찬송했다고 기록합니다.
한밤중, 캄캄한 절벽 앞에서! 만일 이들이 성공과 출세의 헛된 신화를 좇는 그리스도인이었다면, 여기서 충분히 절망하고 옛날로 돌아가는 겁니다.
“믿음도, 하나님도 별수 없지 뭐!”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 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 했구나”(시73:1-2)”

시련 앞에서, 삶의 참모습이 드러납니다. 좋을 때는 잘 모르지요. 문제없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에 빠지고, 고통스런 삶의 자리에 서면! 믿음있는 사람과 믿음없는 사람이 구별됩니다.

복음을 전하고, 기적을 나타내고, 능력의 사역을 감당한 바울과 실라가 축복은 고사하고, 억울하게 매 맞고,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낙심하고 원망할 수 있는 자리 그런데 그들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찬미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26절 보면,. 그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의 터전이 흔들렸다. 곧 문들이 모두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이며 차꼬가 풀렸다.
세상에!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울과 실라에게 진정으로 감사할 일, 감격스런 장면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전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진정한 역사하심은 바로 그 다음 장면부터입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 사건! 이 기적은 오늘 본문의 핵심 메시지가 아니고, 서론입니다. 여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감옥문이 열리고, 탈출한 바울과 실라! 그들은 모두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람들을 모아다가 간증집회를 엽니다.
프랑카드내걸고, 버스에 랩핑 광고 붙이고, SNS에 광고 할 겁니다.
<기적과 능력의 종! 감옥에서 나오다!> 상암월드컵 축구장에 수만명을 모아 놓고, 간증집회 할 겁니다.
“우리가 기도했더니 감옥 문이 열어 주셔씁니다!  
우리가 찬송불렀더니 차꼬가 풀렸습니다. 미-숩-니-까? 할렐루-야!
이른바 능력의 설교입니다. 참기름을 바른 것처럼 화려하고 선동적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은 다른 뜻이 있으셨습니다.
아니다! 아니다! 그건 내 뜻이 아니다!
바울아! 실라야! 옥문을 열고, 기적을 베푼 것은!
너희를 위한 것이 아니다!

기적으로 감옥 문이 열리는 것이 죄수들에게는 구원이고 축복이지만! 그 기적 가운데 죽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잘못도 아니데, 죽어가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감옥을 지키던 간수입니다.
성경은 유독 이 간수를 주목합니다. 바울 일행에게는 더 없이 좋은 일이었던 기적이 간수에게는 파멸과 죽음입니다. 이 상황을 가장 먼저 파악한 사람은 바로 복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일행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세요!
27절 열린 감옥 문을 보고, 간수가 자결하려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28절에 바울이 소리를 지릅니다! “우리가 여기에 있소”
스톱! 간수 양반! 도망 안 가고 그냥! 있다니까!
아마도 간수는 자기 귀를 의심했을 겁니다.
그들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반납하고, 감옥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간수야 죽든지 말든지, 우리는 할렐루야! 도망가면 되는거지!

이 시대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이였습니다. 믿음의 진수를을 보여 줍니다.
이게 믿음이고, 이게 능력이고, 이게 기적입니다. 이런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들이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누가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을 마다합니까?
누가 축복받는 것을 마다하겠습니까?
그런데 주어진 기적의 기회를 반납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축복이요, 성령의 능력입니다.

누군들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나만 거룩하고,은혜받으면 되는 겁니까?
다른 이들은 코로나 걸려 죽든말든 상관없는 겁니까?

감옥 문을 열어주신 기적!
이것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뒤에 따로 있었습니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 주시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 가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이뤄주십니다.

간수가 죽든지 말든지, 옥문이 열렸다고, 달려 나오면 그건 은혜도,믿음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기적이 일어나길 원하시지요!
진정한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기적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 이뤄지는 겁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적입니다.  

모든 물건은 품질로 구분됩니다. 사람도 격이 있습니다. 인격, 인품이라고 하지요!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사는 것입니다. 교회라고 다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 간수가 경험한 예수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자기만 사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형편을 살피고, 그 생명을 구원하는 것! 이것이 복음임을 보았던 겁니다.
“바울 ! 저 분이 믿은 하나님이라면 나도 믿겠습니다!”

예수 믿음이란?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주목하고,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기적의 출발입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고 그 억울함을 풀어 버릴 기적의 기회조차 마다하고, 기적을 스스로 반납하고, 더 큰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바울의 삶의 모습!  이 얼마나 아름다운 감동입니까!

바울 사도의 신앙과 삶의 품격은 이런 겁니다.
간수는 바울 일행의 이런 태도와 인품을 보고 “주 예수를 믿으라!”
이 말씀을 능력으로 받았습니다.

본문 행16:35절 이하를 보세요! 저들을 불법적으로 감금한 치안관들이 앞에와서 사과하고 풀어 줍니다. 바울 일행은 아주 당당하게 공식적으로 권위를 회복하고 걸어서 감옥을 나옵니다. 그리고,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서 (40절) 서로 격려하고 떠납니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시대에 여러분의 삶을 통해 이런 기적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강도만난 이 시대에 이런 교회 이런 성도를 찾으십니다.
우리 목양교회를 통해 이런 진정한 기적이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  관리자 21·02·05 154 13
  준비하라!  관리자 21·01·21 8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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