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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사건 1
 관리자  | 2020·05·23 20:12 | HIT : 20 | VOTE : 2
이청산목사 주일설교 / 목양교회 2020 0517
에덴 사건 1 (창세기강해 11)
창3:1-7

창 3:1 <사람의 불순종>
뱀은 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하였다.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
4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5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

   한국신학대학 1학년생으로 광주도청 사수대가 되어 계엄군의 총탄에 사망한 유동훈열사를 기억합니다. 아버지 유창열목사의 아들입니다. 평소 “정의와 진리를 위해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는 말씀을 따라 순교의 길을 선택한 아름다운 신학도였습니다.
사건을 보는 시각에 따라 이름이 달라집니다. 폭동, 사태, 항쟁, 민주화운동이라고 합니다. 어제 일처럼 제 기억에도 생생한데, 벌써 40년 전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 가운데 동학농민운동, 3.1 독립항쟁, 4.19학생혁명과 함께 중요한 역사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통해 이 땅의 민주화를 이루어 주신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희생당하고, 고문, 투옥등으로 억울하게 피해를 입었던 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에덴동산의 사건이 바로 이 시대의 인간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에덴동산 사건은 인간본성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2장 마지막 부분이 남았습니다.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창2:25)

부부는 서로를 잘 압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대에게 장점과 단점을 보여주고, 보고 삽니다. 내 남편과 아내는 장점과 단점 중에 어느 것이 많을까요! 서로에게 장점이 많은 부부가 되길 축원합니다.
세상에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상대의 단점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매일 매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장점을 무한 칭찬해 주세요! 단점을 줄이는 비결입니다. 반면에 잘못된 칭찬은 독입니다.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연기를 너무 잘해!”한다면, 그건 칭찬이 아니지요!

단점은 지적하되 상대가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상처를 소독하고 꿰매듯이 조심스럽게 치료해야 합니다. 상처가 다 나았어도 건드리면 통증이 있지요.

계속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면 처음에는 부끄러워 하다가, 다음에는 수치감이 들고, 반감을 갖게 됩니다. 다음에는 감추게 되고, 결국은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이후에는 따로 노는 겁니다.
이렇게 돌처럼 굳어진 마음은 치유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부부들이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 빠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깝기에 범하기 쉬운 잘못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살펴서 자존감을 세워주는 일이 우선입니다. 아픔을 덮어주고, 조심스런 손길로 쓰다듬고 서로를 위로해야 합니다. 세상에 이 일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내 남편과 내 아내를 다른 사람이 위로하고,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당신의 손길로 남편을 지키고, 아내를 지키십시오. 가정을 다시 세우십시오. 당신의 손길은 하나님을 대신한 손길입니다.

2장에서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3장에서 갑자기 깨집니다.
뱀이 등장하고, 먹지말아라! 먹어도 된다는 갈등의 중심에 선악을 알게하는 열매가 등장합니다.

역사 속에  여러 종류의 사과가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을 초래한 파리스의 사과. 스위스 독립운동의 불을 지폈다는 빌헬름 텔의 사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뉴턴의 사과. 컴퓨터와 인공지능(AI) 연구의 길을 열었지만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자살해 애플 컴퓨터의 로고가 된 앨런 튜링의 사과….
단연 으뜸 사과는 오늘 창세기에 등장하는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하와)가 먹고 이어 아담에게도 권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됐다는 그 금단의 과일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순간에 갑자기 하나님이 나타나 사과가 목에 걸리는 바람에 생겼다고 해 남성의 울대뼈를 ‘아담의 사과(Adam’s apple)’라 부르는 전통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실제로 성경에 사과는 없습니다. 선악과라는 표현도 없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라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주무대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선 가장 흔한 과일인 무화과를 선악과로 이해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천지창조’에서 그린 나무는 무화과나무입니다.  

그런데 왜 선악과가 사과로 불리게 되었을까요! 히브리 성경은 그리스어 번역을 거쳐 5세기 제롬의 주도 아래 라틴어로 번역됩니다. 로마가톨릭의 정경이 된 불가타성경입니다.
히브리 성경에 열매를 <페리(peri)>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것을 라틴어 말룸(ma–lum)으로 번역합니다. 말룸은 <사과>라는 의미입니다.
존 밀턴의 ‘실낙원’에서 이 과일을 사과로 기록함으로, 선악과는 사과라고 불리우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과가 아니라, 왜? 에덴동산에서 죄가 시작되었는가!입니다. 본문은 인간의 타락의 본질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에덴동산의 타락은 우리 현실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사건의 핵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 뱀의 질문dl 정교합니다.
정말로!  모든 나무의 열매를!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

4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5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뱀이 장난질을 했고, 거기에 넘어가는 인간의 연약함이 죄악의 시작입니다. 뱀이 문제가 아니라 뱀의 말을 듣고 넘어간 사람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본래 뱀은 구약에 여러 곳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만수기 21장에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 불만하다가 불 뱀에 물려 죽게 됩니다. 이때 구리 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달아 높이 세웁니다. “구리뱀을 쳐다보면 산다” 그리 뱀은 구원,치유와 생명,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리스 문화에서도 치유와 회복의 상징입니다. 지금도 병원 약국의 심볼마크가 지팡이와 뱀입니다.
마태16:16에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해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잠언에 뱀은 지혜와 슬기로움의 상징입니다.

단지 뱀은 인간에 의해 욕심과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이용되었습니다.
지금도 뱀은 우리 생활 속에서 기어 다닙니다. 당연한 진리에 시시비비를 따지게 합니다. 의심을 갖게 합니다. 과학자에게 의심은 발견과 발명의 동기가 됩니다만 영적인 면에서 의심은 지옥으로 가는 경로입니다.

뱀은 의심으로 기어들어 옵니다. 하와의 마음속에 “정말로” “전부!”라고 물으면서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삶에도 선악과는 있습니다.
정말로! 진짜로! 하며 지식과 정보가 진리인 것처럼 유혹합니다. 가짜지식과 정보가 가득한 세상입니다. 지식과 정보는 언제라도 바뀔 수 있습니다. 사실이야! 하면서 요즘 인터넷상의 가짜뉴스들이 뱀처럼  마음을 충동합니다. 이런 사람들, 상황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의 에덴동산입니다.

믿음 안에서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진리만이 영원합니다.

5절 이후에 뱀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사람만 남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욕심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창3:6)

주변에 먹을 것이 널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는데 거기서 뭘 또 더 지혜가 더 필요합니까?
그런데 인간은 지식이 많아지면 인간이 지혜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식과 지혜는 결국 하나님과 사람을 멀어지게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일들이 많습니다.
탐스럽고, 보기에 좋고, 세련되고, 분위기 있는 것들에 마음이 끌립니다.
시간이 지나서 편안해지고, 넉넉해지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으리라! 더욱 더 잘 섬기고, 헌금도 제대로 드려야지! 합니다.

하지만, 여유가 되고, 넉넉하고, 살만하니까,
결국은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정보와 지식으로부터 섬김과 희생이 생기지 않습니다. 실력으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편안함은 오히려 믿음과 멀어지게 합니다.

먹으면 눈이 뜨여서, 선악을 알게 한다!
하나님의 판단하시는 일을 사람이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욕심과 편견을 가진 사람이 선악을 판단하면 그것 또한 재앙입니다. 평생을 은혜롭게 헌신하며 살았는데 마지막에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리더들을 봅니다. 안타깝습니다. 자기가 기준이 되면 그렇게 됩니다.

많은 아담과 하와들이 자기가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을 세우고 살려고 합니다. 이런 세상을 보시고 하나님은 에덴동산의 타락 이야기를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욕심과 판단에 따라 사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느냐!입니다.

세상 살면서 우리는 안타깝게도 전자의 경우로 대부분 빠져듭니다.
자기생각에 충실한 것이 바른 판단이라고 믿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 (롬3:11-12)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좋은 것들만 가득하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아담과 하와는 그곳에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에덴은 하나님이 만드신 낙원입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좋은 것을 좋은 것인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자신의 지식과 판단을 우선했습니다. 결과는 하나님을 피하여 숨게 되었고, 에덴에서 추방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다시 에덴으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생명나무로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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