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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라!
 관리자  | 2019·07·25 11:15 | HIT : 24 | VOTE : 2
목양교회 이청산목사 주일설교  20190721
두려워 말라!
출14:1-18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교회에서 특별하게 많이 읽히고 사랑받던 성경책이 출애굽기입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며 피눈물을 흘리고 중에 주님께 눈물의 기도를 드리던 히브리 민중들의 기도가 일제 36년 식민지 백성으로 억압받던, 우리 성도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출애굽기를 읽으며 대한민국도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을 눈물로 기도드렸습니다. 민족지사들이 간도 용정에 모여서 제일 먼저 교회를 세운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일제 말기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출애굽기를 설교하거나 읽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기둥과 같은 두 개의 축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구약성경은 출애굽 사건입니다. 출애굽 사건은 구약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더욱 굵어지고 든든해지길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가는 길 앞에 홍해 사건을 준비하셨습니다.

3·1독립항쟁 100주년 만세소리가 아직 쟁쟁한데 경제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속마음을 감추고 있던 일본이 본격적으로 경제침략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도록 밟아버리겠다는 겁니다. 아시아의 맹주 역할을 위한 군국주의 부활을 대놓고 시작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까요! 이런 마음으로 오늘 하나님 말씀의 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나아왔더니 앞에는 홍해바다가 가로막혀 있습니다. 좌우엔 높은 산이 솟아 도망갈 곳도 없습니다. 막다른 골목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때마침 이집트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살하려고 추격해 오고 있습니다. 진퇴양란입니다.
바로 이 말씀이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과 매우 비슷합니다. 국민의 힘으로 부패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적 정부를 다시 세웠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빈부의 격차, 기득권자들의 저항, 사회적 약자들의 쏟아지는 요구들, 외부적으로 북한의 핵무기 문제, 중국,미국,일본의 경제적 압력 앞에 놓여 있습니다.
마치 홍해 앞에서 갈바를 알지 못하는 히브리 백성들과 같은 형국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간절히 필요한 때입니다.

기도 중에 제게 주신 위로의 말씀입니다.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의 오른손을 붙잡고 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돕겠다.” (이사야 41:13)

지금으로부터 427년 전,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명가도>를 이유로 이 나라를 침략해서 많은 백성을 죽이고 전 국토를 유린했습니다. 대한제국 말 을사늑약으로 우리의 국권을 탈취했습니다. 그 후 36년간 우리 백성들은 일제의 만행 앞에 온갖 고난을 당했습니다.
이런 중에 일제 침략의 원흉 이토오 히로부미를 안중근의사가 살해합니다. 또 3.1혁명을 통해 민족독립운동 의 횃불을 들었고 우리 민족이 살아 있음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2019년 현재, 태평양전쟁 전범인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아베와 일본 군국주의 부활음모를 획책하는 일본 극우세력들이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이들이 우리나라에 경제침략을 시작한 것입니다.
일본이 닌자의 칼을 숨기고 슈퍼마리오를 내세워 도쿄 올림픽에서 비상을 꿈꿀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 재무장이라는 아베의 욕망의 날개는 정의의 태양 앞에 녹아내리고 말 것입니다.
역사가 브루스 커밍스는 지난 세기 일본을 “태양을 향해 날고 있는 이카루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루스는 밀랍으로 날개를 붙여 크레타섬을 벗어나려 했지만 태양에 너무 가깝게 갔다가 밀랍이 녹아서 추락합니다. 일본은 섬나라를 벗어나 대륙을 날고 싶었지만 태양은 날개를 녹여버렸다. 이카루스의 날개는 일본의 야망인 동시에 한계였다.
우리 한민족에겐 일본에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5천년 역사 동안 왕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한 적이 많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맨주먹으로 나라를 지켰습니다. 행주산성의 행주치마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이순신 장군과 함께 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임짐왜란을 극복한 것도 이름없는 백성들의 헌신이었습니다. 바로 독재와 타락한 정권을 물리친 419, 518, 촛불 시민의 혁명정신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일본보다 월등히 앞선 민주주의가 있습니다. 일본은 전승국 맥아더가 시켜서 민주주의를 도입했지만 우리는 국민들이 쟁취했습니다.

본문을 보세요. 노예들이 히브리 백성들과 모세에게 자존심이 몹시 상해 있던 바로.
그러면 그렇지! 미련한 것들, 저 노예들을 다시 끌고 오너라!
다시 끌고 올 수 없다면 모두 홍해 바다에서 죽여라!
선발된 병거 600대, 이스라엘을 추격합니다. 바로가 얼마나 비웃었을까요?

애굽을 떠났다고 바로가 구경만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애굽의 공격,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완전자유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온갖 걱정근심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의 기록을 보면 동일한 경험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영적 공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니엘서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세요. 다니엘을 보세요! 믿음을 지켜 우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핍박과 죽음의 위기가 닥쳐옵니다.
믿음으로 신실하게 살던 어린목동 다윗! 그의 인생에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의 귀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축복의 시작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고난과 아픔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울왕의 칼날을 피해 도망다녀야 하는 신세가 됩니다.

출14: 4절과 8절에 “내가 바로의 고집을 꺽지 않고 그대로 둔다./ 주님께서 이집트 왕 바로의 마음을 고집스럽게 하시니” 이를 통해 보듯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의 쓰임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하게 쓰임을 받느냐! 아니면 바로처럼 안타까운 역할로 쓰임받느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당신의 미래 여정을 처음부터 모두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마십시오.
예수 믿었다고 신앙여정을 시작했다고 만사형통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위기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위기상황에 빠지자 곧바로 바로는 군대를 보내 공격합니다. 비웃고 조롱하고 공격합니다. 내 허점만 보이면 마귀는 곧바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상황을 허락합니까? 이스라엘 역사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이유가 다,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공격받은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4절을 보면, “내가 주님임을 알게 하겠다”!
내 백성 건드리면 너 죽는다.!

내 백성을 축복하는 자를 나는 축복할 것이고
내 백성을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라!(창12:3)

본문 말씀 속에 도도히 흐르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입니다.
어떤 형편에 있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첫 번째 만난 위기는 홍해였습니다.
이 홍해의 위기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11절 12절입니다. "애굽에 공동묘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로 이끌어 죽게 하느냐? 평생 자손대대로 애굽에서 종살이나 하다가 죽게 내버려두지..."
걸핏하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비난하고, 반대만하는 모습. 요즘 어디서 본 듯하지 않습니까?
적군과 전쟁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팔짱끼고 서서 지휘관이 잘못이라는 둥, 작전이 잘못됐다는 둥! 먼산 불구경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홍해로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고통과 눈물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았는데 내 삶이 코너에 몰렸다?  여기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다 망하면, 그것은 성공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여 살아가다가 어려움을 겪으면, 그 어려움 겪는 자체에 분명한 이유가 있고,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홍해의 위기? 나는 아직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나, 기다리면, 하나님의 섭리는 나타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할렐루야.

4절에서 애굽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힘들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기다리세요.
하나님의 사람들에 있어서 최악의 상황은,
하나님의 최선을 도움을 가져다 줍니다.
저녁에 해가 지자 마자 아침이 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매일마다 밤이 지나 새벽이 옵니다. 찬란한 아침 햇살이 떠오릅니다. 매일같이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싸인입니다.

가장 어두운 새벽에 어둠과, 찬란한 아침 햇살은 맞물려 있습니다.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면, 어두움 뒤에 찬란한 아침은 밝아 오게끔 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위기 앞에서 두려워 했습니다. 10절을 보세요.
누구에게나 두려움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줄 아는 것'과 '두려워 떠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두렵고 또 두렵지만 믿음 때문에, 희망 때문에, 앞으로 나갑니다. 찾아온 두려움을 넘어서는 사람이 진정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13절에 모세는 “두려워 말라!”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것이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역사 하신다.」 이 말씀을 믿고  나아가십시오. 언제나 삶에는 두 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두려움의 대상을 볼 것인가?
아니면 두렵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찬송하며 갈것인가?
여러분은 어느 길로 가겠습니까?

앞에는 홍해가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뒤에서는 이집트군대가 추격해 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잘 살펴보면 오늘 본문 이어지는 14:15절에 홍해는 갈라졌습니다. 출4장 19절 이하에 보면 구름기둥이 뒤로 물러가 이집트 군대가 추격하는 것을 막아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에 가려 달려오는 이집트 군대를 잘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달려와 우리를 칠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두려움에 떨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 백성들과 함께 하심 구름기둥을 보지 않고 잘 보이지도 않는 원수, 이집트만 보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지금 무엇에, 어느 곳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의 인생길에 어떤 홍해가 가로 막혀 있습니까!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문제, 질병,물질의 문제, 남에게 말 못할  문제까지, 가로막고 있는 홍해가 있지요!

문제는 위기상황을 두려워 할 것이냐?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이냐의 갈림길입니다.
문제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라
두려워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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