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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길1
 관리자  | 2021·04·19 06:22 | HIT : 41 | VOTE : 1
가장 좋은 길 1
고린도전서 12장 31-13:11절
2021 0418 목양교회 이청산목사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걸
목마름에 지쳐보면 안다. 물이 생명인걸
코 막히면 안다. 숨쉬는 것만도 행복인걸

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일터가 낙원인걸
아파보면 안다. 건강이 엄청 큰 재산인걸
잃은 뒤에 안다. 그것이 참 소중한걸

이별하면 안다. 그이가 천사인걸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걸

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작은게 행복인걸
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걸 (김홍신)

세상 살아가는 모습은 두 가지입니다.
깨닫고 사는 사람과 그냥 되는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없어지고 난 뒤에 더 없이 소중했음을 압니다.
지나고 나면 깨닫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지나가기 전에!
깨달을 수 있도록 영의 눈이 밝혀주시길 축원합니다. 다음 주까지 두 번에 나누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가장 좋은 길이 무어라고 하십니까?
“사랑” 모두가 알고 있는 이것이 참 어렵습니다. 사랑하려고 기도하고 노력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사랑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아지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본문의 사랑의 말씀을 현실 그대로를 적용해서 얽으면 이렇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오래 참지 못합니다., 무뚝뚝하고,툭툭 거립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뽑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시기하고,질투하고,교만하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무례합니다. 화을 잘 냅니다. 마음속에 원한을 품고 비난합니다.
6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현실덕인 이익 때문에 불의한 것과 타협할 때가 많습니다.,.
8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변하고, 어제와 오늘에 마음이 달라집니다. 기분 좋으면 간이라도 빼줄 것 같다가도, 마음이 변하면 국물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울퉁불퉁, 깨지고, 때묻고, 더럽고, 모순 투성이인 우리 내면의 모습들입니다.  이것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유년시절에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았던 자녀들은 어른이 된 다음에 자기 자녀를 학대할 확율이 3배가 더 높습니다.
알콜, 약물, 섹스중독 등 중독증에 걸려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중독증에 시달릴 확률이 2배나 더 높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라난 우리 속에는 몇 가지의 성인아이의 얼굴이 있습니다. “성인 아이”라 부릅니다. 심리학자 휴 미실다인이 「몸에 밴 어린 시절」이란 책에서 처음 <성인아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미 2천 년 전에 고린도 교회 <성인아이>들을 향해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모양의 <성인아이>의 얼굴이 있습니다.
첫째로 이기적, 자기중심적 얼굴입니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나”는 전부입니다. 한 번도 내 요구를 거절하신 적이 없고,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나는 철없는 아이, 버르장머리없이 자라났습니다. 어디서나 자기가 중심이고, 남들에게 늘 관심을 받아야 마음이 평안합니다. 이거 매우 심각한 병입니다.
이런 사람과 결혼하면 배우자가 죽어납니다. 이런 부모를 만나면 자식들이 이유도 모른 채 뒤집어 씁니다.
결혼하고 아니가 생기고 어느 남편의 고백입니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계란말이가 어느 날부터 아이 앞에만 놓여지더랍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무척 당황했답니다. 이제는 남편인 자기가 중심이 아니라 전부 아이가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답니다. 그래도 사회에서는 인정받고 열심히 사는데 집에만 들어오면 찬밥 신세입니다. 요즘 남편들의 마음입니다.
내 속에 숨어 있는 성인 아이가 도대체 무엇인가를 알고, 찾아내야 합니다.

둘째로 “성취 지향적”인 성인 아이의 얼굴이 있습니다.
우등생 컴플렉스에 걸린 아이는 시험 때만 되면 배가 아팠습니다.
평생토록 성취 지향적인 삶의 모습으로 살았고, 그 결과 이른바 성공하고 출세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열등감이 있고 자기존재 가치에 대한 불안감이 있습니다. “성공적인 실패자”입니다. 사회에서 성공한 것 같은데 영혼 안엔 상처 투성이입니다. 경쟁만하면서 살았기에, 푸근한 마음, 친절한 마음, 배려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항상 자기 방식이 아니면 다 틀렸다고 합니다. 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세번째는 “반항아”의 얼굴입니다.
반항 아이의 기질, 반항아의 성인 아이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나친 훈계 때문에 이 아이의 얼굴은 불만과 분노의 얼굴을 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매사에 반항적인 이유입니다.
반대로 유약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절제하지 못하는 성인아이”의 얼굴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방치형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고독하고 외로운 성인 아이” 때문에 항상 결핍을 채우려고 무언가를 찾습니다. 늘 밖으로 다닙니다. 친구 성공, 소유욕망을 채우려 합니다.

종교적으로 권위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부모의 신앙생활을 보면서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답니다. 왜냐하면 어린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우리 아빠 엄마처럼 살면 안되는 것이라고 느껴졌다는 겁니다. 아이들의 눈은 정확합니다. 이 고백을 듣는데 얼마나 안타깝고 아프던지요!

우리 자신과 가정은 어떤 모습입니까?
어릴 때부터 몸에 밴 구부러지고 상처난 성품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성인아이를 치료하고 진정한 아버지로, 성숙한 어머니로 살 수 있을까요?

먼저 과거를 치유받아야 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화살입니다.
과거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용서입니다. 십자가는 용서의 상징이고 통로이고 방법입니다.
용서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용서는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어디서도 가르쳐 주질 않습니다. 교회마저도 축복만을 가르칩니다. 용서를 배우는 것이 믿음의 길이고 완성입니다. 교회는 용서를 배우는 학교입니다. 가정은 용서를 실천하는 곳입니다.

용서하려면 예수님처럼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내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먼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입니다. 용서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했던 하나님만이 도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니 반드시 도와 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빼곡합니다.
에덴동산에는 책임전가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저 여자가, 저 사람이 그랬어요!” 상대에게 책임을 떠 넘기는 불쌍한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가인과 아벨에게는 형제간의 질투가 얼마나 무섭고 대단한지! 동생을 죽이는 살인의 상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문에는 거짓말하는 피가 흐릅니다.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자기가 죽을까 봐!
다음에는 아들 이삭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합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은 눈먼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가로챕니다. 그 자식들은 자기 동생 요셉을 죽으라고 우물에 던져 버리고는 죽었다고 거짓말 합니다. 콩 심은데, 콩나는 겁니다.

또한 편애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스마엘보다는 이삭을 편애했고, 이삭은 에서를 편애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편애했고, 자녀들 가운데 요셉만을 편애하는 편애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여자만 질투가 있다구요! 천만에요!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죽이려했던 이유가 이겁니다. 편애를 받은 아이들은 질투심이 강합니다. 압살롬, 아도니아가 질투의 화신이 되어 인생 망가진 겁니다. 때문에 부모를 통해 나도 모르게 자기 속에 뿌려진 상처들과 저주의 피를 어떻게 치유받을 수 있습니까?
전 국민 모두가 신경정신과, 치유상담쎈타에서 약지어 먹고, 심리치료 받으면 해결될까요? 조금 도움은 될 겁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영적인 치유가 필요합니다.

용서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레위기 26:40절 이하에 보면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속적인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모르고 살았던 부모를 내가 대신해서 부모의 죄를 고백하는 겁니다. 예수를 믿기는 믿었는데 이중적으로 살았던 내 부모의 죄를 내가 대신 고백하는 겁니다. 우리 가문에 뿌리내려있던 사탄의 저주를 주님 앞에 자복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부모를 용서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내 부모가 의도적으로 일부러 내게 상처를 준 것 아닙니다. 먹고 사느라고 힘들었고, 어떻게든지 자식새끼들 굶기지 않고,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야 했습니다. 정신없이 사느라고 자식들의 속마음을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내 부모도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용서하십시오.
당신으로부터 아버지 마음을 빼앗아간 부모를 용서하십시오. 온전히 어머니의 마음을 빼앗아간 부모를 용서하십시오.

하나님은 어린시절의 상처를 축복의 기회가 되게 하십니다. 아픔과 상처는 인생에 커다란 재산입니다. 축복의 통로입니다.
내가 연약한 존재이고 아픔을 가지고 살아봤기 때문에, 주님은 나에게 더 가까이 오십니다.

병든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다!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막2:17)
지난날의 기억 때문에 상처받고 아파하는 너희를 치유하러 왔다!
예수님이 바로 오늘 내 마음의 문제를 아십니다. 주님의 손을 잡고 일어서십시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함으로 예수님을 닮고,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성인아이를 치유하고 극복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한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그 사람과 똑같아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면 거기에 마음의 힘빼앗깁니다. 내가 자꾸 미워하는 사람을 생각하게 되면 나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빼앗깁니다.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라도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특별히 가까운 사람, 배우자와 부모와 자녀를 용서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상사가 괴롭힙니까? 동료가 힘들게 합니까? 용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용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해 주시는 겁니다.

우리 가정, 내 아이, 내부모, 내 남편, 내 아내!
내가 아니면 누가 다독거려 주고, 쓰다듬어 줄 수 있습니가?

내가 아니면 누가!  말을 들어 주고, 이해해 줄 수 있습니까?
내가 아니면 누가 덮어 주고 용서해 줄 수 있습니까?

이제부터는 용서할 수 없는 그를 미워하고 증오하던 그 시간에 예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아픔과 상처를 짊어지셨습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할렐루야!
과거에 감겨진 성인아이의 밧줄을 말씀의 검으로 끊어 버십시오.

지난날의 아픔과 상처들로 인해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묶어 놓고 살아가면,
하늘에서도 묶여진 상태로 있으리라.
그러나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이 모든 저주의 짐들이 풀어지게 될 것이라.

용서가 가장 좋은 사랑입니다.
용서가 최고의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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