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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통로가 되라
 관리자  | 2021·04·13 07:52 | HIT : 60 | VOTE : 4
2021 0411 목양교회 이청산목사
축복의 통로가 되라!
사무엘하 7:8-17

  우리나라 농구계의 전설 서장훈을 아시지요. 지금은 연예인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씩 툭툭 던지는 말이 다른 연예인들하고 다른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인가 하고 검색해 봤어요! 그랬더니 단순하게 운동 신경이 좋아서 농구를 잘한 농구선수만이 아니었습니다. 시합 때마다 20점 이상을 넣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한 선수였습니다. 시합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날 자신의 경기 비디오를 몇 번이고 다시 봤답니다. “아, 저기서 페인트를 한번 더 했으면 넣는 건데! 조금 더 뛰어야 했는데!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비디오를 보면서 후회하고 반성하고 자책했습니다. 이것은 자학이 아니라 동기부여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채찍질합니다. 시합에서 지면 그날 입었던 유니폼은 버렸습니다. 간절하게 승리를 바랐기 때문에!
결벽증 환자 서장훈! 다른 연예인들이 놀립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시합을 나가는 전날은 항상 몸조심 마음조심! 음식을 가려먹고, 행동도 주의하고,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합니다. 경건한 마음, 구도자의 자세로, 시합 날이 가장 최고의 컨디션이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냉정해져야 한다. 누가 나한테 위로하고 칭찬하는 말에 안주하지 말아라!”
“아프니까 청춘이다! 스스로를 토닥 토닥해라!” “그 정도면 잘 한거야” 이런 싸구려 위로에 길들여지지 마라!. 인생은 달달하지 않다! 시간은 마냥 기다려 주지 않는다. 달달한 행복을 원하면, 오늘은 입에서 단내나게 뛰어야 한다.
내 인생은 남이 대신할 수 없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라! 샴페인은 묵히면 더 좋은 것이 된다! 샴페인을 오늘 따지 마라!
요즘 젊은이들이 귀 기울여 들을만한 이야기입니다.
40대 중반이 된 서장훈은 오늘도 자신의 이런 삶의 원칙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씀 앞에서 영적인 차원으로 더 깊이 내려가야 합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겁니다. 자신의 철저한 노력과 더불어서 하나님이 도우셔야 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 부류의 중요한 차이는 이겁니다. 자기가 판단하지 않고 사는 사람과, 늘 자기 판단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울처럼 사는 사람과 다윗처럼 사는 사람입니다.

지난 주중에 성경 통독을 한 부분이 사무엘상 마지막 부분과 사무엘하 전반부입니다. 사울과 다윗의 갈등과 삶을 통해 하나님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영적인 교훈을 주셨습니다.

성공학, 자기개발서의 저자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말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라”고 합니다. 좋은 말입니다만 전부가 다 주인으로 살려고 하니까 문제입니다. 모두가 내가 주인공인줄 압니다. 자기 마음대로합니다. 자기가 주인이기에 대접받고자 합니다. 모든 일에 주도권을 쥐려고 합니다. 여러분 가정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이것 때문에 부부갈등을 겪는 이들이 많지요! 남편, 아내가 아니라 주님께 주도권이 있습니다.
살아보면 내 생명도, 인생도, 살아온 모든 경험과 발걸음들도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하면 “종 의식으로 살아라”(써번트 쉽)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항상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인 나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평생을 예수님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것을 다시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네가 주인이 아니다!” 자기가 주인인 줄로 착각하다가 망한 사람이 바로 사울입니다.
이 시간에 사울과 다윗의 삶을 보면서 영적인 결단이 있길 바랍니다.

삼상15:19절에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왜 주님께 순종하지 않고 악한 일을 했습니까?” 물었더니,
21절에 “다만” “단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을 “다만”이라고 합니다. 사무엘은 심각하게 생각하고 권면하는데 사울은 “단지”라고 말합니다. 사울의 가치 기준이 보입니다. 말씀이 기준이 아니라 자기생각이 기준입니다. 이것이 사울의 죄입니다.
전쟁을 앞두고 급해서 사무엘 선지자 대신에 자기가 제사를 드릴 수도 있다고 판단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선지자가 제사를 집례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사을은 스스로 말씀과 율법을 어기고도 잘못을 모릅니다.

사무엘은 이런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왕이라서 자신의 생각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방식대로 하면 이것이 고집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고집” 자기교만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버리십니다.
삼상28:6에 보면
사울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도움을 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이후에도 사울은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8절에 변장을 하고 무당을 찾아갑니다. 무당이 사울을 알아보고 깜짝 놀랍니다. 갈때까지, 막장까지 간 겁니다.

한 번 기도해 보고 응답이 없으니 포기하고 다시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마지막까지 자기 멋대로 합니다. 주님 앞에 끝까지 엎드려 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마지막에 세상과 우상을 의지합니다. 영적으로 미아인 사람, 영혼이 탈진한 사람의 초라한 마지막을 봅니다.
자신의 정적인 다윗을 끝까지 죽이려고 했지만, 마지막에 사울은 세 아들과 함께 적군에게 비참한 최후를 당합니다. 순종을 모르는 사람의 결말입니다.

기도할 수 있을 때까지! 마지막까지 구하지 못한 것이 사울의 잘못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고 마지막까지 엎드리고 순종하십시오.
마지막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는 하나님의 종” 이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내가 감히 손을 들어,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우리의 임금님을 치겠느냐? 주님께서 내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나를 막아 주시기를 바란다.”(삼상24:6)
삼상26:11절에도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죽일 수는 없다.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을 가지고 가자!

두 번이나 기회가 왔습니다. 사울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이익을 위해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생명을 해하지 않습니다. 사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기회가 있었지만, 주님께 맡깁니다.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은 사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영적 선택입니다.

사무엘상의 곳곳에 다윗의 믿음을 보여 주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삼상 23장 2절에 주님께 기도하는 다윗이 있습니다. 전쟁을 결정하기 전에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부하들이 반대합니다. 그래서 4절에 다시 다윗이 기도합니다. “블레셋을 너의 손에 넘겨주겠다”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사무엘하2:1절에도 사울이 죽고 난 뒤에 바로 사울의 왕궁으로 입성해도 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기도합니다. “유다의 성읍으로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어느, 성읍으로 올라가야 합니까” 다윗이 주님께 기도하며 묻습니다. “헤브론으로 가거라!” 주님이 대답해 주십니다.
다윗은 주님께 기도하고 결정했습니다. 기도하고 행동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영적으로 사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왔음에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께 기도하고 결정했습니다. 결정적이 순간에 기도하고 영적 선택을 합니다.
하나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보십니다.
사울은 세상적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영적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았습니까? 어떤 선택을 하며 살고 싶습니까?

살다보면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하는 경우를 만납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이 있습니다. 찌질하고, 탐욕적인 사람과 맞닥뜨리면     어떻게 하십니까?

다윗은 어떻게 했는지 보십시오.
“다윗이 사울과 그의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며 조가를 지어 부르고,”(삼하1:17)

다윗이 흘린 눈물을 보며 그의 믿음의 깊이와 인품을 봅니다.
사울이 적군의 손에 죽었으니 속 시원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다윗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비록 정적이었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이었지만, 사울의 죽음 앞에 진심으로 슬퍼하며 눈물 흘립니다.
사울의 장례를 치른 야베스 사람들에게도 감사로 축복합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5:4)

뒷동산 오솔길에 봄비에 맞아서 떨어진 꽃잎에도 아픔이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의 죽음이겠습니까?
찌질한 상대가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도 같이 상대하면 똑같은 사람되는 겁니다. 불쌍히 여기십시오.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해 주십시오. 받아들이든지 거부하든지는 그 사람의 몫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해결하십니다.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끝맺음하시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영적인 선택을 하십시오.

상대가 어떠하든지 다윗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항상 종으로, 애통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다윗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복을 약속하십니다.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들이 저의 자식을 매로 때리거나 채찍으로 치듯이, 나도 그를 징계하겠다. 내가, 사울에게서 나의 총애를 거두어, 나의 앞에서 물러가게 하였지만, 너의 자손에게서는 총애를 거두지 아니하겠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이어 갈 것이며, 네 왕위가 영원히 튼튼하게 서 있을 것이다.”(삼하7:14)

다윗 한 사람을 통해서 자녀가 복을 누리고, 가문이 빛을 발하고 온 이스라엘이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예비하셨습니다.
다윗에게 내리시는 복과 은혜처럼, 우리 목양교회 성도들의 가정과 삶에도 주님의 손길이 영원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로 인해서 식구들 간에 웃음이 넘치고 형제 자매간에 기쁨이 되고
공동체 안에서 위로와 배려가 넘치길 바랍니다.
우리를 통해서 가문과 백성과 역사에 시온의 대로가 열리게 하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고난받고 순종하셨습니다. 바로 이 십자가의 예수님을 하나님은 부활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의 십자가는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유일한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축복의 통로가 되신 것은
우리도 주님처럼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려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임을 기억하십시오.

축복의 통로가 되는 비결은 오직 하나입니다.  
다윗처럼! 예수님처럼 마지막까지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내 인생도, 자녀들도, 내가 이룬 성공도. 실패도!
내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공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반드시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이 시간 모두 다 가슴에 손을 대고 따라서 기도합니다.

“오 나의 하나님!
언제나 순종함으로, 영적인 선택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보호하시고,
우리를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종의 가문과 이 백성이
영원토록 주께서 내리시는 복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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