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장로회:: 목양교회

현재위치 : 게시판
TOTAL ARTICLE : 332, TOTAL PAGE : 1 / 17
에스플랑크니스테!
 관리자  | 2019·05·23 16:41 | HIT : 22 | VOTE : 1
에스플랑크니스테!
눅 10:25-37
20190519 목양교회 이청산목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그래서 우리 예수님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바닷가로 가셔서 밤새 고기 잡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배고프지! 이리와 밥먹자!”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에게 다시 세 번이나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정성과 최선을 다하여! 모든 것을 다하여! 사는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모든 것을 다하여 섬기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예배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시지요!

자! 그러면 오늘은 이 말씀의 구체적인 실천론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말씀을 통해서 보면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어떤 사랑을 따라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의 놓인 자리를 보세요! 우리가 지난 석주 동안 계속해서 보았던 말씀의 바로 뒤에 붙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에 구체적인 실천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본문은 사복음서 중에 유일하게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비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에 관한 온정을 더 관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공생애의 첫 가르침도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4:18-19)입니다.

예수님의 마음 중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마음은 이런 마음입니다.
안쓰러운 마음, 짠한 마음, 상대의 아픈 마음이 내 속에 들어와서 모른 채 할 수 없는 마음, 다시 찾아가지 않을 수 없는 마음, 저절로 마음이 쓰이는 그런 마음! 같이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던 제자들을 찾아 갑니다.(요21장) “애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밤새 한 마리도 못잡은 그들을 보시고, 너무도 안쓰러워서 그물을 던져라! 그물에 고기가 가득 잡힙니다. 주님은 먼저 바닷가로 오셔서 숯불을 피워서 생선도 굽고, 빵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배고프지! 와서 밥 먹어라”

배고픈 이들을 보고, 오병이어를 행하신 예수님!
나병환자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신 예수님

이 세상에서 무얼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시렵니까?
주님 앞에 무엇을 가지고 가면 가장 좋아하실까요!

성경 본문은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대화하던 중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에 대해 물었고, 예수님은 율법에 근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그 기준으로 확인해줍니다.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죽도록 맞은 사람이 쓰러져 있습니다. 길을 가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이 대목에서 이들이 정결율법을 의식하여 부정한 시신을 만질까 꺼려했다는 이유를 붙일 수 있습니다.
“피하여 지나갔다”는 <안티 파레르코마이>인데, 그냥 지나간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반대편으로 지나갔다는 뜻입니다. 제사장, 레위인은 당시 사회 지도층입니다. 존경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죽어가는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의도적으로 반대편으로 피해서 지나가 버립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안타까이 여길 줄 모르는 자칭 경건한 유대인들(제사장,레위인)의 껍데기뿐인 믿음을 지적하십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달랐습니다. 정통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계층으로 인간 이하의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율법에 앞서 어려운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강도 만난 사람에게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관 주인에게 치료비까지 맡겨 계속 돌봐줄 것을 당부까지 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의 특징을 발견합니다. 당시 유대교의 율법적인 믿음으로는 믿음도, 사랑도, 실천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당시 사회의 주류, 신앙의 주류였던 레위인과 제사장은 하나님의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당시 인정받지 못하고, 천대받던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 사랑을 실천한 믿음있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시간이 남아서, 돈이 넘쳐나서 이런 일을 했을까요! 아마도 밥먹을 시간도, 잠잘 시간도 없이, 죽어라고 일만하던 사람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싫어하던 직종에 근무하던 사람들입니다. 이른바 3D업종 종사자입니다. 그러니 돈도, 시간도 없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어떤 것에 써야 하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시간과 물질을 어디에 소비했을까요? 당연히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일,사람들에게 썻겠지요. 이것은 섬김도,봉사도 아닙니다. 굳이 표현하면 취미 생활,자기만족입니다. 저들이 드린 은혜로운 기도와, 거룩한 예배는 도대체 사랑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겁니다. 사랑과 관계가 없으면 하나님과도 무관한 겁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에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쏟고 살고 있습니까?

설교 제목이 <에스플랑크니스데>입니다.
33절에 “측은히 여겨” <에스플랑크니스데>입니다.
측은히 여기다!란 뜻의 헬라어 원전의 단어입니다. 이 한 단어가 <사랑>을 가장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말씀입니다.
(내장,창자,장기를 뜻하는 ‘스플랑크논’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스플랑크논의 동사형인 스플랑크조마이-불쌍히 여기다!입니다. )

한자어여서 어렵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자어이기에 더 뜻이 분명한 경우입니다.
<측은(惻隱)>의 사전적인 뜻을 찾아보니,
惻슬퍼할 측( 슬퍼하다/ 사무치다/ 가엾게 여기다)
隱숨을 은 (숨다/점치다/가엾어 하다)

측은히 여기는 것은 슬퍼하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상대방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1”
예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마음이 바로 이 마음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경우에도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불쌍히 여기십시오. 가엽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에서 믿음도, 사랑도 시작됩니다.


빌 2장을 봅니다.
5절: 우리는 이러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6절: 그는 하나님 자신이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했습니다.
7절: 오히려 자기 자신을 낮추어 종의 형체로,
     사람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8절: 사람으로 모양으로 나타나시어,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 하셨는데,
     그것은 곧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이런 마음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측은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비유 끝에 예수님은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는 구체적인 반문을 하십니다. 이어서 결론으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You Go!  and Do the Same” (good news bible)

가서! 이 사람처럼 해라!

우리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사랑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생명을 바쳐서 섬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불쌍히 여길 수는 있지 않습니까?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일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먼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다른 동네, 먼 곳에 사는 이들을 섬기고 사랑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세상에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한 일을 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지금 내 손길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펴십시오.
불쌍히 여기십시오.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불쌍히 여기십시오.
부부간에, 자식부터, 측은하게,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우리 교우들 간에 서로 불쌍히 여기고, 가엽게 여기십시오.

오직 측은히 여기는 것만이 은혜입니다.
구원의 완성이고, 믿음의 능력입니다.






惻  슬퍼할 측
隱  가엽게 여길 은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  관리자 19·05·29 16 1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관리자 19·05·18 31 2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GAMBO